2018년 3월 28일 수요일

[게임 칼럼] 포켓몬스터 파랑 구조대 리뷰 겸 회상


2000년대, 당신이 하던 게임은?

추억의 피쳐폰 게임

 2000. 듣기만 해도 먼 옛날로 느껴진다. 무려 10년 이상 전이라니. 그 당시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떠한 매일을 보냈는지 떠올리려 노력 해봐도, 더욱 기억은 아득해질 뿐이다. 하지만 그런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도 그 당시 즐기던 게임에 대한 추억만은 뚜렷하기 그지 없다. 누군가는 줄서서 산 디아블로2를 떠올릴 것이고, 누군가는 피시방에서 친구들과 즐기던 스타크래프트를 떠올릴 테지. 현재는 다시 찾아 해보기도 힘든 피쳐폰 게임이나 문방구 앞에서 동전을 넣고 즐기던 오락실 게임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어느 정도 구매력이 있던 청소년, 혹은 성인들의 추억일 테다.




2000년대 PC방 풍경
 부끄럽지만 아직 20대의 대학생에 불과한 작성자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맙소사 초등학생이었다. 초등학생에게 피시방이란 불량 학생들이 모이는 무서운 장소이고, 핸드폰 게임은 부모님 핸드폰에 몰래 받았다가 걸려서 혼나는 정도의 물건에 불과했다. 그 당시 부모들의 게임에 대한 반감은 엄청났기에 어린이가 게임을 즐길만한 환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어린이가 자유롭게 즐길 수 있던 게임이, 아니 게임기가 단 하나 있었는데, 그 이름은 닌텐도 DS.
 

2000년대, 한국 닌텐도의 전성기




 닌텐도 DS가 남녀노소 모두 즐기는 게임기가 될 수 있었던 데에 가장 기여한 타이틀은 뭘까? 게이머에게 닌텐도를 대표하는 시리즈를 꼽아보라고 시킨다면 마리오, 젤다, 포켓몬 등 걸출한 시리즈 중에서 선택 장애를 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닌텐도 DS의 성공의 일등공신이 뭘지 묻는다면 오래 고민하지는 않을 것 같다. ‘매일매일 DS 두뇌 트레이닝’. 다들 한 번 들어봤을 이 타이틀은, 게임으로 뇌를 단련한다는 획기적인 발상으로 닌텐도 DS의 보급에 크게 기여했다. 심지어 노인 치매 예방이랍시고 어른들이 부모님께 선물하는 일까지 일어났다고 하는데 뭔 말을 다하겠는가. 국내 시장은 한 술 더 떠, 장동건을 모델로 한 광고까지 내보내, 게임에는 관심 없던 사람도 닌텐도 DS는 갖고 있는 신기한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탤런트의 친숙한 이미지를 활용한 광고는 효과적이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덕에 닌텐도 DS는 대한민국의 게임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기존의 게임기들이 일부 매니아 층의 전유물이었다면 닌텐도 DS는 그야말로 국민 게임기였다.

 그 덕에 어린이들은 그야말로 살판이 났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당시는 스마트폰도 없었고 컴퓨터는 부모가 감시하고 있었으니 어린이들에게는 게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휴대용 게임기라면? 들고 나가서 밖에서, 아니면 방에 숨어서, 그것도 아니면 두뇌 단련을 한다고 구라를 치고 얼마든지 플레이할 수 있다. 그렇게 닌텐도 DS는 초, 중학생들의 어린 시절을 책임졌다.
 

그래서 닌텐도로 어떤 게임을?


 지금의 한국 닌텐도의 추태를 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닌텐도 DS가 흥행하던 시절의 한국 닌텐도는 그야말로 갓텐도였다. 유명 게임부터 마이너한 게임까지 전부 한글화해서 정발했고, 그 결과 밤을 새면서 플레이해도 타이틀이 쌓여있을 정도였다. 마리오, 소닉, 와리오, 레이튼, 동물의 숲, 커비, 젤다... 그 중에서도 내가 홀린 듯 빠져들었던 시리즈는 역시 포켓몬스터였다.


속지마 썅년이야


다 모은 친구는 없었다

















 투니버스에서의 애니메이션 방영, 게임보이판 포켓몬 금은의 한글 정발, 포켓몬 빵에 들어있던 띠부띠부씰. 저 수많은 유혹 사이에서 포켓몬에 안 빠질 어린이가 있을까? 저 유혹에 쐐기를 박듯 DS로도 포켓몬스터 게임이 출시되었다. DP-PT-HGSS로 이어지는 라인은 환상적이었다. 새로운 스토리와 세계를 모험하는 데 끊임없이 몰두하게 되었으며, 예전에 했던 금은이 뛰어난 그래픽으로 리메이크된 것을 보고 감동까지 느꼈다. 그 후 나온 BW까지 포함해서, DS로 나온 포켓몬 게임들은 지금도 반복해서 플레이할 만큼 명작이다. 3DS가 거하게 말아먹은 덕에 DS판의 뛰어난 완성도는 더욱 부각된다.

 그래서 저 포켓몬 게임들을 전부 탐닉한 어린이는 이제 뭔 게임을 할까? 포켓몬스터에서 헤어 나오기에는 명작의 여운은 너무 깊고 농밀하다. 반복해서 엔딩 후 컨텐츠를 즐기던 어린이들은 이윽고 닌텐도DS에 다른 포켓몬 타이틀들이 있는 걸 알게 된다.


드디어 언급 됐다

 포켓몬 대시, 포켓몬 토로제, 포켓몬 레인저, 포켓몬 불가사의 던전... 많기도 하다. 머리가 익은 지금이라면야 포켓몬 프랜차이즈를 빌렸을 뿐인 똥겜인 걸 직감하고 대부분을 걸렀을 테지만 어린아이가 뭘 알까. 해보고, 이윽고 실망할 뿐이다. 하지만 그런 똥겜 속에는 언제나 갓겜이 숨어있다. 걸렀다면 만나지 못했을 명작이 말이다. ‘포켓몬 불가사의 던전과는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드디어 거론된 포켓몬 불가사의 던전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파랑 구조대가 바로 이 글에서 다룰 게임이다.

 
로그라이크로의 징검다리


 다들 한 번 쯤은 어렸을 때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게 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처음 먹어본 음식은 대부분 트라우마로 남아 버린다. 나 같은 경우 버섯조림이 그랬는데, 만약 버섯을 잘게 썰어 넣은 볶음밥 같은 거로 버섯을 처음 접했다면 지금쯤 버섯을 즐겨 먹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는 것은 어려운 법이다! 게임도 그렇다. 새로운 장르는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의 재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억지로, 혹은 잘못된 게임을 접한다면 그 장르에서 영영 멀어져버릴 수도 있다. 취향과는 별개로 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시뮬레이션 게임을 처음 하는데 심시티나 롤러코스터 타이쿤이 아니라 캐피탈리즘이나 역설사 게임을 했다고 해보자. 그 사람이 앞으로 시뮬레이션 장르를 기피하게 된다고 해도 납득이 갈 것이다. 그만큼 코어한 장르일수록 그 장르에 점차 재미를 붙일 수 있도록 조무사게임들이 필요한 법이다.


뉴비는 보통 이거 보고 나간다

 이번에는 로그라이크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제정신인 게이머라면 로그라이크를 입문하려는 사람에게 드워프 포트리스’, ‘카타클리즘’, ‘-등의 게임을 추천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 게임들은 로그라이크에 친숙한 사람들이라면 금방 적응해 즐길 수 있겠지만, 입문자라면 처음 설정 창에서 바로 찍싸고 다시는 쳐다도 안 볼 게임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나온 던그리드네크로댄서’, ‘엔터 더 건전’, ‘FTL’ 등은 훌륭한 로그라이크 조무사 게임이다. 당연하지만 지금 말한 '조무사'는 멸칭이 아니다. 나열한 게임들은 일반 게이머들도 즐길 수 있도록 로그라이크의 재미를 책임지는 핵심 요소만 계승한 채 불편한 부분은 과감하게 잘라낸 게임들이다. 저런 조무사- 로그라이트라고 불리는 게임들을 즐긴 게이머들은 보다 쉽게 정통 로그라이크에 입문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세계로의 징검다리가 되어주는 조무사 게임들은 중요한 것이다.

훌륭한 로그라이트의 예

 그래서 도대체 이 이야기를 왜 하는 거냐 묻는다면, 불가사의 던전 시리즈가 내가 로그라이크로 첫 발을 내딛는 징검다리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다. 내가 특이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내 나이대라면 적잖은 수가 저 게임으로 로그라이크 아다를 땠다고 생각한다.

 단언 컨대 포켓몬 파랑 구조대는 명작이다. 아다를 때준 게임이라고 추억 보정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저 게임은 기본적으로 토르네코의 대모험’, ‘풍래의 시렌으로 대표되는 이상한 던전 시리즈의 게임 방식을 차용한 게임인데, 같은 제작사가 만들었음에도 큰 차이를 보인다.
 풍래의 시렌 1 같은 경우는 지금도 찾아서 플레이하는 사람이 많은 명작이다. 하지만 시렌은 명작이긴 해도 첫 로그라이크 게임으로 해보기엔 무리가 있다. 재밌긴해도 시스템이 복잡하고 불친절한 부분이 꽤 존재한다.


-다음 장-

 이 움짤은 최근 로그라이크 갤러리에 올라온 짤이다. 시야가 없던 곳에서 해골마왕이 튀어나온 바람에 수면 마법에 걸리고 말았다. 그런데 운 나쁘게도 주위에 해골마왕이 2 마리나 더 있었고, 그 결과 수면 마법을 여러 번 중첩해 맞아버려 부활을 했음에도 아무 것도 못하고 죽어버렸다. 진성 로그라이크 팬이라면 안일했다.’며 웃어 넘길 수 있을지 몰라도 라이트 게이머라면 게임을 집어던질 것이다.

도망칠 수 없는 초대형 몬스터 하우스

 이처럼 시렌은 부조리한 부분이나 불친절한 부분이 꽤 많다. 영구적으로 힘을 깎거나 무기의 강화치를 떨궈버리는 함정/몬스터부터 시작해서 아이템을 훔쳐가거나 변화시키는 몬스터, 죽이면 다른 몬스터를 레벨 업 시키는 몬스터, 최대 만복도를 %로 깎아 버리는 몬스터도 있다. 이런 몬스터들은 나름대로 상대하는 요령이 존재하긴 하지만, 갓 입문한 뉴비가 그런 걸 하나하나 익히기엔 너무나 좆같다. 난이도도 그렇다. 노템으로 시작해 꼼수 없이 정공법 만으로 엔딩을 볼 수 있긴 하지만 매우 어렵다. 알아내기도 힘든 잔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시스템적인 꼼수도 사용해야 겨우 가능하다. 이런 어려운 난이도 속에서 자기만의 기술을 만들고 도달도를 올려나가는 것이 시렌의 참맛이지만 입문자에겐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런데 포켓몬판 불가사의 던전은 다르다. 이상한 던전의 어렵고 복잡한 시스템은 과감하게 잘라내 버리고 핵심 요소만 남겼다. 심지어 레벨 리셋도 사라졌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포켓몬의 요소와 시렌에 부족했던 스토리를 꽉꽉 채워 넣었다. 효과는 대단했다!

전통의 평타도 존재하나 역시 핵심은 기술

 기본적인 전투 시스템부터 포켓몬스터의 기술 사용 방식이 도입되었다. 그 결과 도구 의존도가 줄어들어 포켓몬 본가를 해본 게이머라면 쉽게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상한 던전 시리즈의 핵심인 상태이상 또한 포켓몬 시리즈에 존재하는 상태이상들로 대체되어 이해하기 쉽다. 어린이들이 하는 걸 염두에 뒀는지 도구나 기술 하나 하나의 설명도 친절하다. 이런 대격변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던전 시리즈의 재미는 잃지 않아, 여러 도구와 기술을 사용해 어려운 던전을 정복해나가는 성취감은 여전하다.

떨어져 있음에도 공격 가능한 기술인 '거품'

 포켓몬스터로만 봐도 보다 흥미로운 요소가 추가되었다. 그 중 제일 큰 건 거리시스템이다. 기본적으로 포켓몬은 단지 공격을 주고 받을 뿐인 게임이었는데, 불가사의 던전은 타일 방식이기에 여러 위치 관계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 결과 어떤 위치에 포지션을 잡고 있느냐에 따라 명중시킬 수 있는 기술이 달라진다. 이는 파도타기를 연타할 뿐인 전투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사람들에겐 엄청난 혁신이었다. 보다 전략을 요구하는 전투는 포켓몬의 매력을 한 층 더 끌어올렸다.

던전 타일도 개성있다

 ‘포켓몬이란 소재로 인한 낮은 심리적 장벽’, ‘간편하고 이해하기 쉬운 시스템’, ‘후반으로 갈수록 점차 어려워지는 훌륭한 레벨 디자인’. 이 세 가지 요소가 수많은 어린이를 로그라이크의 세계에 끌어들였다. 그 중 과연 몇 명이나 로그라이크라는 용어를 찾아보고 빠져들게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내 게임 세계를 바꿔놓은 작품임이 틀림 없다.
 

빠져드는 스토리


 위 문단에서는 뛰어난 레벨 디자인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는데, 이 게임이 명작일 수 있었던 데에는 스토리적인 부분도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상한 던전 본가 시리즈는 스토리 요소가 적다. 유저가 직접 찾아보지 않는 한, 게임 내에서 필수적으로 보게 되는 텍스트는 이상하리만치 적다. 그런 적은 텍스트량으로도 매력적인 캐릭터와 스토리를 제공한다는 점이 이상한 던전 시리즈의 장점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게임을 계속 플레이할 동기를 주는 데에는 좀 부족함이 있다. 그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포켓몬 불가사의 던전 시리즈는 본가에 맞먹을 정도의 방대한 스토리를 삽입했다. 스토리 던전 하나를 클리어 하면 스토리가 진행되고, 서브 던전들을 돌게 된다. 그러다 보면 다음 스토리가 개방된다. 던전을 반복해서 클리어하는 과정이 지루해질 수 있다는 문제를 다음 스토리에 대한 기대를 주는 것으로 해결한 것이다.


닌자 용검전의 컷씬

 이는 고전 게임 닌자 용검전 등에서 사용한 방식과 유사하다 할 수 있다
. 난이도가 매우 높은 게임이지만 한 스테이지를 깰 때마다 나오는 수려한 완성도의 도트 컷씬과 스토리는 도전심을 자극한다. 그렇다고 스토리가 과다한 것도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스토리 요소는 오히려 쾌적한 게임 플레이를 방해한다. 분량 조절을 실패한 JRPG 등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내가 게임을 하는 건지 A키를 눌러 텍스트를 넘기는 반복 노동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다. 그런 의미에서 불가사의 던전의 스토리 분량과 배분은 정말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자,오늘밤은 400년만의 재회를 축하하지않겠습니까?
명작 JRPG의 대표작 크로노트리거

 JRPG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 게임의 스토리는 JRPG의 정석을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인 이유, 혹은 사소한 계기로 시작하게 된 모험이 끝내 세계를 구한다...’. 저 게임이 발매될 당시 기준으로 봐도 진부하고 고전적인 스토리이다. 하지만 절대 나쁜 스토리는 아니다. 애초에 저 스토리는 극한까지 축약한 개요에 불과하며, 지금 나오는 많은 게임들도 저 틀에 끼워 맞춰질 수 있다. 하지만 저 드퀘식 스토리는 많은 비판을 받는다. 왜일까?
그 원인은 스토리의 진행 과정에 있다. 비판 받는 게임들은 스토리의 큰 틀은 물론 내용과 진행 흐름까지도 진부한 내용으로 채워 넣는다.

How many times have we filled the shoes of a lonely teenager from a small village? How many times has that village been attacked by a wandering group of bandits?우리는 도대체 몇 번이나 작은 마을에 사는 외로운 10대가 되어야했는가? 또 그 마을은 몇 번씩이나 도적 떼의 습격을 받았는가?

-TOP 10 WAYS TO FIX JRPGS (IGN 칼럼)

 IGNJRPG를 비판한 유명 칼럼에서 지적하는 부분도 같다. 전체적인 스토리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그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는 흐름 즉 이벤트를 지적하는 것이다.

이런 건 신선하고 좋다
하지만 이건 좆같다

 실제로 최근 게임 중에서도 고전적인 스토리를 차용한 JRPG지만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게임을 찾아볼 수 있다. 페르소나5가 대표적인 예인데, IKE IKE KAITODAN으로 대표되는 JRPG 특유의 오글거림은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히트했고 스토리도 호평 받았다. 사회적 문제와 괴도단이라는 소재의 결합이 JRPG로서는 신선했기 때문이다.

이 게임에 트레이너는 없다

 ‘파랑 구조대도 그 점에서 같다. 스토리의 틀은 진부하지만 플레이어가 세계를 구하기까지 지루할 틈이 없다. 자신이 갑자기 포켓몬이 되어버렸음을 깨닫는 부분에서 이 게임은 시작된다. 주인공은 자신이 원래 인간이었단 사실 외에는 모든 기억을 잊어버렸고, 자신이 도대체 왜 포켓몬이 되었는지 알기 위해 모험을 시작한다. 포켓몬스터 본가를 플레이했던 플레이어는 자신이 트레이너일 것이라 생각하고 이 게임을 시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갑작스럽게 포켓몬이 되어버린 인간이다. 플레이어는 놀라고, 이윽고 주인공에 자신을 투영하게 된다.


이 시점에는 이미 포켓몬 세상의 일부가 되어있다

 기억을 되찾으려 노력하지만 성과는 없고, 주인공은 파트너와 함께 구조대(탐험대) 활동을 하며 포켓몬 세상에 적응한다. 그 과정에서 위기에 빠진 포켓몬들을 구하며 주인공과 플레이어는 성취감을 느낀다.


팬텀의 선동으로 인해 도망자 생활이 시작

 그러던 와중 갑자기 스토리가 급전개된다. 현재 포켓몬 세상에 닥쳐오는 위험은 인간때문이란 소문이 퍼지고, 주인공이 사실 인간이었던 사실이 밝혀져 버린다. 그로 인해 쫓기는 신세가 된 주인공은 자신을 믿어주는 파트너와 함께 도망자 생활을 시작한다. 마을에서 재정비하고 다음 던전으로 향하는 것에 익숙해져있던 플레이어는 마을 없이 던전을 연속해서 돌아야 한다는 위기에 직면하고 주인공 일행의 도주극에 감정 이입을 하게 된다.

파랑 구조대의 최종전

 결국 주인공의 결백함은 밝혀지고 오히려 주인공만이 포켓몬 세계의 위기를 막을 수 있는 존재란 게 알려진다. 주인공은 힘든 모험 끝에 최종 던전인 천공의 탑을 올라 레쿠쟈를 쓰러뜨리고 세계의 멸망을 막는다. 그리고 자신의 소명을 다한 주인공은 소멸을 맞게 되고 파트너와 이별하게 된다.


당신의 사명은 끝났다

 대충 4 개의 파트로 이루어진 이 스토리는 플레이어의 몰입에 초점을 맞춰 설계됐다. 엔딩을 보며 울었다는 사람이 상당히 많을 정도다. 텍스트만 봐선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 번 직접 해봐라.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막기 어려울 것이다.
 

몰입을 돕는 OST


 포켓몬 불가사의 던전 시리즈의 ost는 매우 좋기로 유명하다. 인기투표에서는 본가 작품들보다 순위가 높을 정도다. 포켓몬 정식 시리즈의 ost가 나쁜 것도 아니고, 불가사의 던전은 어디까지나 마이너한 외전 게임에 불과한데 어떻게 그런 순위 역전이 가능했을까?
 그 이유 또한 몰입에 있다. 게임 ost는 단순히 귀가 즐거운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유튜브를 켜서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두고 게임을 하면 그게 최고의 ost일 것이다. 게임 ost의 진수는 게임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것에 있다.

STS의 육각령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하게 나오는 ost는 플레이어를 매료한다. 최근 흥행한 다키스톤-slay the spire 또한 흥행에 ost가 적잖이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보스 중 하나의 육각령의 경우, 1턴에는 아무 소리 없이 잠잠하다가 2턴이 되는 순간 불이 하나씩 켜지며 보스전 브금이 울려 퍼진다. 웅장한 BGM에 압도하게 되고 목숨을 건 싸움이란 것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된다.





 포켓몬 불가사의 던전도 그렇다. 게임을 하는 내내 다양한 분위기의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라스트 던전에서 그 정점에 이른다. 파랑 구조대의 천공의 탑은 다른 OST들과는 다르게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 불가침인 신의 영역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라스트 던전이기에 무진장 어렵지만, ost 덕에 던전을 헤쳐 나가는 행위 자체에서 전율감을 느낄 수 있다.




 포켓몬 OST 순위 1위에 빛나는 결전! 디아루가브금은 스토리의 대단원을 내리기에 더할 나위가 없다. 긴 모험 끝에 전설의 포켓몬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의 감동, 그리고 싸워야만 한다는 비장감이 솟구쳐 오른다.
 

단점 또한 명확


 그러나 완벽한 게임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특히 첫 작품인 파랑 구조대의 경우 후속작인 시간/어둠의 탐험대에 비해 부실한 부분이 많다. 지능 스킬 같은 회차 요소에 가까운 부분은 제쳐두더라도, 짜증나는 부분이 꽤 있다.

 우선 1회차에는 진화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첫 번째 단점이다. 진화를 하면 너무 쉬워지거나, 스토리가 이상해질 거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40렙을 찍어가면서도 진화를 하지 않는 주인공을 보면 상당히 허탈해진다.


천공의 탑을 올라야만 단 1번 시도할 기회가 주어진다
 포켓몬을 동료로 만드는 것도 확률이 너무 낮다. 게다가 시도할 기회조차 적다. 반복해서 몬스터볼을 던지면 되던 본가와 달리, 이 시리즈는 막타를 쳤을 때 일정 확률로 동료가 되는 식이다. 실패하면? 다시 또 찾아서 잡아야한다. 확률이 높은 것도 아니기에 노가다를 하게 되고 피곤해진다.

원하는 포켓몬으로 시작할 수 없는 것도 꽤 불편하다

 휴대기기와 로그라이크 장르라는 한계도 존재한다. 배터리가 중간에 나가 버리면 던전 공략을 실패한 것으로 처리해 들고 있던 아이템이 전부 사라져 버리는데, 휴대기기가 얼마나 잘 방전되고 에러가 나는지 떠올려보면 가혹한 시스템이다. 다른 대체안은 없었나요?
 

요원한 한글화


 꽤 호평을 받은 시리즈였지만 마이너한 시리즈라서 그럴까. 시간/어둠의 탐험대를 끝으로 이 시리즈의 한글화는 끝나버렸다. 그 후 확장판인 하늘의 탐험대, 완전 신작인 무한대 미궁, 초 불가사의 던전 등이 나왔지만 정발되진 않았다. 팬으로선 아쉬울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포켓몬, 이상한 던전은 2D가 어울린다

 게다가 3DS에 넘어와 나온 첫 게임인 마그나 게이트와 무한대 미궁의 경우 쉴드 칠 여지도 없는 똥겜이었다. 3DS로 나온 포켓몬 본가 게임들도 DS에 비해 망작이라는 걸 생각하면 3DS에 마가 낀 것이 분명하다. 그나마 그 후 출시된 초 불가사의 던전은 호평을 받았다는 건 그나마 다행인 점이다.


스위치판 포켓몬은 어떤 형태일까?

 포켓몬 시리즈가 3DS에서 닌텐도 스위치로 넘어갈 모습을 보이고 있는만큼 불가사의 던전 시리즈도 스위치판 신작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이미 몸은 자라나 성인이 되어버렸지만, 포켓몬에 열광하던 그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볼 수 있길 바란다.